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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기2

효령대군 이보의 졸기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가 졸(卒)하니, 철조(輟朝)하고 조제(弔祭)하고 예장(禮葬)하기를 예(例)와 같이 하였다. 보(𥙷)는 태종(太宗)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총명하고 민첩하였으며, 이미 관례(冠禮)하고는 효령 대군(孝寧大君)에 봉(封)해졌다. 젊어서부터 독서(讀書)하기를 좋아하고 활쏘기를 잘하였는데, 일찍이 태종을 따라 평강(平康)에서 사냥하면서 다섯 번을 쏘아 다섯 번 다 맞추니, 위사(衛士)들이 모두 감탄하였다. 태종이 일찍이 편치않으므로 이보(李𥙷)가 몸소 탕약(湯藥)을 써서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으니, 태종이 가상히 여겨 특별히 노비[臧獲]를 내려 주었다. 세종(世宗)께서 우애(友愛)가 지극히 도타와서 늘 그 집에 거둥하여 함께 이야기하였는데, 마침내 저녁이 되어서야 파(罷)하곤 하였.. 2022. 7. 17.
좌의정 허조의 졸기 좌의정 허조(許稠)가 졸(卒)하였다. 허조는 경상도 하양현(河陽縣) 사람인데, 자(字)는 중통(仲通)이다. 나이 17세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고, 19세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뒤에 은문(恩門) 염정수(廉廷秀)가 사형을 당하였는데, 문생(門生)과 옛 부하이던 아전[故吏]들이 감히 가 보는 이가 없었는데, 조(稠)는 홀로 시체를 어루만지며 슬피 울고, 관곽을 준비하여 장사지냈다. 경오년에 과거에 합격하였고, 임신년에 우리 태조께서 즉위하시어 특별히 좌보궐(左補闕)을 제수하였고, 곧 봉상시 승(奉常寺丞)으로 옮겼다. 그때에 예제(禮制)가 산실(散失)되었었는데, 조(稠)가 전적(典籍)을 강구(講究)하여 힘써 고제(古制)에 따르게 하였고, 뒤에 잇따라 부모상(父母喪)을 당하였는데, 무릇 치상(治喪.. 2022. 7. 5.